에어컨 고장 수리비, 집주인이 낼까 세입자가 낼까 — 5가지만 확인하면 답이 나옵니다

에어컨 고장 수리비 집주인 세입자 부담 기준 대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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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에 원룸 에어컨이 멈추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질문은 하나입니다. “이거 누가 고치는 거지?” 원칙은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계약할 때부터 집에 딸려 있던 옵션(빌트인) 에어컨이라면 수리비는 임대인(집주인) 부담, 세입자가 직접 사서 설치한 에어컨이라면 세입자 부담입니다. 여기에 세입자 과실이 있었는지, 계약서에 특약이 있는지, 고장이 사소한 수준인지가 더해지면서 결론이 갈립니다.

실제로 많이 막히는 지점은 따로 있습니다. “계약서에 수리비는 임차인 부담이라고 적혀 있잖아요”라는 한마디에 그냥 포기해 버리는 경우죠. 그런데 그 특약이 언제나 그대로 통하는 것은 아닙니다. 대법원은 범위를 명시하지 않은 수선의무 면제 특약을 소규모 수선에만 한정해 해석해 왔습니다. 아래에서 판단 기준표, 근거 법조문, 특약의 한계, 그리고 합의가 깨졌을 때 쓸 수 있는 절차까지 순서대로 짚어보겠습니다.

1분 판정표 — 다섯 가지 축으로 갈립니다

다음 다섯 가지만 순서대로 확인하면 대부분의 상황은 정리됩니다. 위에서 아래로 읽되, 앞쪽 항목일수록 판단에 미치는 영향이 큽니다.

확인할 점 해당된다면 부담 주체(원칙)
계약 당시 에어컨이 옵션·빌트인으로 제공되었다 임대차 목적물의 일부로 본다 임대인
세입자가 직접 구입해 설치한 에어컨이다 임대인이 빌려준 물건이 아니다 임차인
계약서에 “시설물 수리비는 임차인 부담” 특약이 있다 소규모 수선에 한정해 해석되는 경우가 많다 임차인 / 단 대규모 수선은 임대인
세입자의 고의·과실로 망가졌다 보관·관리 의무 위반 문제가 된다 임차인
필터 청소, 리모컨 건전지 등 사소한 문제다 사용·수익을 방해할 정도가 아니다 임차인

표에서 셋째 줄이 실무에서 가장 자주 다툼이 됩니다. 특약이 있다는 이유로 임대인이 전부 발을 빼는 상황인데, 뒤에서 따로 다루겠습니다.

근거 조문은 민법 623조와 626조입니다

민법 제623조 — 임대인의 의무

제623조(임대인의 의무) 임대인은 목적물을 임차인에게 인도하고 계약존속중 그 사용, 수익에 필요한 상태를 유지하게 할 의무를 부담한다.

핵심은 “계약존속중”과 “유지하게 할”이라는 표현입니다. 열쇠를 넘겨주는 순간 임대인의 역할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약이 살아 있는 동안 그 집을 쓸 수 있는 상태로 계속 유지해 줄 의무를 진다는 뜻이죠. 옵션으로 제공된 에어컨은 임대차 목적물에 포함되는 설비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정상적으로 쓰다가 수명이 다해 고장 난 경우라면 이 조문이 임대인 쪽을 가리킵니다. 특히 한여름에 냉방이 전혀 되지 않는 상태는 “사용·수익에 필요한 상태”가 깨진 것으로 보기 쉽습니다.

민법 제626조 — 임차인의 상환청구권

제626조(임차인의 상환청구권)
① 임차인이 임차물의 보존에 관한 필요비를 지출한 때에는 임대인에 대하여 그 상환을 청구할 수 있다.
② 임차인이 유익비를 지출한 경우에는 임대인은 임대차종료시에 그 가액의 증가가 현존한 때에 한하여 임차인의 지출한 금액이나 그 증가액을 상환하여야 한다. 이 경우에 법원은 임대인의 청구에 의하여 상당한 상환기간을 허여할 수 있다.

연락이 안 되거나 당장 못 견뎌서 세입자가 먼저 돈을 내고 고쳤다면, 이 조문이 회수 근거가 됩니다. 물건을 원래 상태로 되돌리기 위해 쓴 돈은 필요비로 보아 임대차가 끝나기를 기다릴 것 없이 곧바로 청구할 수 있습니다. 반면 없던 에어컨을 새로 달아 집의 가치 자체를 올린 경우는 유익비 성격이라, 계약 종료 시점에 그 가치 증가분이 남아 있어야 청구가 가능합니다. 청구 시점이 달라진다는 점을 기억해 두면 좋습니다.

“수리비 세입자 부담” 특약, 만능이 아닙니다

수선의무는 강행규정이 아니어서 특약으로 조정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특약이 어디까지 효력을 갖느냐가 문제죠. 대법원 1994. 12. 9. 선고 94다34692, 94다34708 판결은 이 지점을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임대인의 수선의무는 특약에 의하여 면제할 수 있으나, 그 범위를 명시하지 않은 경우에는 통상 생길 수 있는 파손의 수선 등 소규모 수선에 한정되고, 대파손의 수리·건물 주요 구성부분에 대한 대수선·기본적 설비부분의 교체 등 대규모 수선은 여전히 임대인이 부담한다.

이 사건에서는 여관 건물의 배관과 보일러가 임차 당시부터 상당히 노후해 전면 교체가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법원은 특약이 있었음에도 그 정도의 수선은 임대인 몫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에어컨에 대입해 보면 이렇습니다. 필터 교체, 리모컨, 간단한 청소처럼 소모품에 가까운 부분은 특약이 그대로 적용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데 실외기 컴프레서를 통째로 갈아야 하거나 매립 배관을 전면 교체해야 하는 수준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사실상 설비 교체에 해당하니, 특약 한 줄로 임대인이 자동 면책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최종 판단은 계약서 문구가 얼마나 구체적인지, 고장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에 따라 달라지므로 단정은 금물입니다. 다만 “특약이 있으니 끝”이라는 말에 그냥 물러설 필요는 없다는 뜻입니다.

상황별로 한 번 더 보기

옵션으로 제공된 에어컨

가장 명확한 경우입니다. 계약서 별지나 사진, 부동산 매물 광고에 “에어컨 옵션”이 표시돼 있다면 그 자체가 근거가 됩니다. 정상 사용 중 수명이 다한 고장, 냉매 누설, 실외기 노후 같은 문제는 임대인에게 수선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세입자가 직접 사서 설치한 에어컨

내 물건이니 수리비도 내가 냅니다. 대신 이사 나갈 때 떼어 갈 수 있고, 벽 타공 등 원상회복 범위를 계약 전에 합의해 두는 편이 안전합니다. 처음 자취를 시작하며 가전을 직접 장만할 계획이라면 자취 초기비용이 항목별로 얼마나 드는지 미리 계산해 두면 예산 짜기가 훨씬 수월합니다.

세입자 과실이 있는 경우

실외기 위에 물건을 쌓아 두어 과열됐다든지, 무리하게 분해하다 부품이 망가진 경우처럼 관리 소홀이 원인이면 세입자가 부담합니다. 다만 “오래 틀어서 고장 났다”는 식의 주장은 과실이라기보다 통상적인 사용에 가깝습니다. 이런 경우까지 세입자 책임으로 몰아붙이기는 어렵습니다.

사소한 하자에 그치는 경우

대법원은 임차인이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손쉽게 고칠 수 있고 사용·수익을 방해할 정도가 아닌 사소한 하자에 대해서는 임대인이 수선의무를 지지 않는다고 봅니다. 필터가 막혀 바람이 약해진 정도라면 직접 청소하는 편이 빠릅니다. 이런 관리만 잘해도 냉방 효율이 올라가서 한여름 에어컨 전기요금 부담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수리비를 청구하기 전에 할 일

  1. 계약서부터 다시 봅니다. 옵션 목록에 에어컨이 있는지, 시설물 수리 관련 특약이 있는지, 그 특약이 범위를 구체적으로 적었는지를 확인하세요.
  2. 고장 사실을 문자나 메신저로 알립니다. 전화 통화만으로는 기록이 남지 않습니다. 날짜와 증상을 남겨 두는 것이 나중에 큰 차이를 만듭니다.
  3. 진단 결과와 견적을 문서로 받습니다. 기사님께 고장 원인과 필요한 작업을 적어 달라고 요청하고, 실외기·실내기 사진도 함께 남겨 두세요.
  4. 가능하면 임대인 동의를 받은 뒤 수리합니다. 사전 협의 없이 진행하면 금액이 과다하다는 다툼이 생기기 쉽습니다.
  5. 월세에서 임의로 빼는 것은 신중히 결정하세요. 필요비 상환청구권이 있다고 해도 일방적 공제는 차임 연체 주장으로 되돌아올 수 있습니다. 공제한다면 사전에 서면으로 통지해 두는 편이 낫습니다.

수리를 기다리는 동안 실내가 견디기 힘들다면 선풍기나 제습기로 버티는 것도 방법입니다. 다만 제습기를 하루 종일 돌렸을 때 전기요금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으니 사용 시간은 조절하는 게 좋습니다.

합의가 안 되면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

임대인이 끝내 응하지 않을 때 소송보다 먼저 떠올릴 수 있는 제도가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입니다. 대한법률구조공단, 한국부동산원 등에 설치돼 있고 비용과 기간 부담이 적은 편입니다.

항목 내용
신청 수수료 조정 목적의 값에 따라 1만원~10만원. 소액임차인, 기초생활수급자, 국가유공자 등은 면제
처리 기간 조정절차 개시일부터 60일 이내 종료가 원칙
조정안 수락 조정안을 통지받은 날부터 14일 이내에 수락 의사를 표시
성립 시 효력 당사자 간 합의와 같은 효력. 강제집행 승낙 문구가 기재된 조정서는 집행력 있는 집행권원과 같은 효력
가장 큰 한계 피신청인이 조정절차에 응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통지하면 신청이 각하

마지막 줄이 이 제도의 결정적 약점입니다. 상대방이 “저는 조정에 안 나가겠습니다” 한마디만 하면 절차가 그대로 종료됩니다. 강제로 끌어낼 방법이 없어요. 그래서 조정은 어느 정도 대화 여지가 남아 있을 때 효과가 큽니다. 처음부터 연락 자체를 끊은 상대라면 내용증명 발송이나 소액사건 소송을 함께 검토하는 편이 현실적입니다. 그렇더라도 수수료와 기간 부담이 작으니 한 번 시도해 볼 가치는 충분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옵션 에어컨이 고장 났는데 집주인이 “네가 쓰다 망가뜨렸으니 네가 고쳐라”고 합니다.

A. 세입자의 고의·과실을 주장하는 쪽이 그 사실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정상적으로 사용하다 노후로 고장 난 것이라면 민법 제623조에 따른 임대인의 수선의무가 문제 됩니다. 수리기사에게 고장 원인을 문서로 받아 두면 대응이 훨씬 수월해집니다.

Q. 제가 직접 설치한 에어컨인데 수리비를 집주인에게 청구할 수 있나요?

A. 원칙적으로 어렵습니다. 임대차 목적물에 포함되지 않는 세입자 소유 물건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설치 자체를 임대인과 합의했고 나갈 때 두고 가기로 정했다면, 민법 제626조 제2항의 유익비 상환 문제로 다퉈 볼 여지가 있습니다. 이때도 계약 종료 시점에 가치 증가분이 남아 있어야 합니다.

Q. 집주인이 끝까지 안 고쳐주면 월세를 안 내도 되나요?

A. 냉방이 전혀 되지 않아 사용·수익이 실질적으로 방해받는 정도라면 차임 감액이나 계약 해지를 주장할 여지가 생깁니다. 다만 판단 기준이 사안마다 달라서, 임의로 월세 납부를 중단하면 오히려 연체로 몰릴 위험이 있습니다. 중단 전에 반드시 서면 통지를 남기고 전문가 상담을 거치시길 권합니다.

정리하면

옵션이면 집주인, 내가 산 물건이면 나. 과실이 있으면 나, 노후 고장이면 집주인. 이 두 줄이 뼈대입니다. 여기에 특약이 있어도 대규모 수선까지 세입자에게 떠넘길 수는 없다는 대법원 법리를 얹으면 대화의 출발점이 달라집니다. 감정적으로 부딪히기보다 계약서 문구와 진단서, 문자 기록을 갖춰 놓는 것이 결국 가장 빠른 길입니다.

본 글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특정 사안에 대한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수선의무의 범위는 계약서 문구, 옵션 제공 여부, 고장의 원인과 규모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구체적인 판단은 계약서를 지참해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 대한법률구조공단 또는 변호사 등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